마이클 잭슨이 모든 영욕을 뒤로 하고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팬은 아니였지만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스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안타까웠다.
연일 쏟아지는 그의 뉴스를 하나씩 보면서 내가 그를 알게된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첫번째 기억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다. 엄마는 자주 나와 내 동생을 이끌고 외할머니 댁에 가셨다. 당시 나에게는 대학생이었던 외삼촌 이 있었다. 어느날 학교에가고 없는 삼촌 책상 위에 마이클 잭슨의 책받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어떤 사진이었는지 기억이 또렷히 난다. 까만 피부에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촉촉하게 젖은 곱슬머리.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거기에 노란색 빤짝이 재킷과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마 내가 흑인을 처음 봤던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공상과학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쯤으로 생각했다.
두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당시 아빠는 종종 일본출장을 다녀오셨었다. 가실때마다 소형전자제품을 하나씩 사오셨었다. 당시에는 코끼리 밥솥, 보온 도시락통, 소니 TV가 각광받던 시기였다. 언젠가 아빠는 일본에서 CD플레이어를 사오셨었다. 그때쯤 CD플레이어가 대중화 되기 시작했었다. 나는 거울처럼 내 얼굴이 비춰지고 레코드판보다 5분1쯤 작은 CD가 너무 신기했었다.
아빠가 CD 플레이어와 함께 사왔던 음반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것이었다. 난 왜 이런 것을 사왔느냐고 타박했다. 들어도 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내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 동생은 그 CD판 위에 지점토를 붙이고 굴리며 놀았다. 이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음반은 오늘날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불리게 해줬던 '스릴러' 음반이었다. 그때 그 CD는 어디에 있을까?
그의 팬은 아니였지만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스타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안타까웠다.
연일 쏟아지는 그의 뉴스를 하나씩 보면서 내가 그를 알게된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첫번째 기억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다. 엄마는 자주 나와 내 동생을 이끌고 외할머니 댁에 가셨다. 당시 나에게는 대학생이었던 외삼촌 이 있었다. 어느날 학교에가고 없는 삼촌 책상 위에 마이클 잭슨의 책받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어떤 사진이었는지 기억이 또렷히 난다. 까만 피부에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촉촉하게 젖은 곱슬머리.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거기에 노란색 빤짝이 재킷과 화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마 내가 흑인을 처음 봤던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공상과학 만화에서 튀어나온 사람쯤으로 생각했다.
두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당시 아빠는 종종 일본출장을 다녀오셨었다. 가실때마다 소형전자제품을 하나씩 사오셨었다. 당시에는 코끼리 밥솥, 보온 도시락통, 소니 TV가 각광받던 시기였다. 언젠가 아빠는 일본에서 CD플레이어를 사오셨었다. 그때쯤 CD플레이어가 대중화 되기 시작했었다. 나는 거울처럼 내 얼굴이 비춰지고 레코드판보다 5분1쯤 작은 CD가 너무 신기했었다.
아빠가 CD 플레이어와 함께 사왔던 음반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것이었다. 난 왜 이런 것을 사왔느냐고 타박했다. 들어도 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내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 동생은 그 CD판 위에 지점토를 붙이고 굴리며 놀았다. 이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음반은 오늘날 마이클 잭슨을 팝의 황제라고 불리게 해줬던 '스릴러' 음반이었다. 그때 그 CD는 어디에 있을까?
세번째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때 였다. 당시에는 HOT가 여고생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시기였다. 나는 HOT 보다는 솔리드를 좋아했었다. 그런 친구끼리 모여 그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를 외우던 때였다. 어디든 튀는 사람은 있는 법. 고상하게 "난 가요는 안들어. 팝이 짱이야"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하도 잘난척을 하길래 "아니 가사는 알아듣냐?"며 비이냥 거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가 1996년 마이클 잭슨의 첫 내한공연이 있었던 해였다. 10대 여고생들에게는 마이클 잭슨이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한다는 사실보다는 HOT가 오프닝 공연을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VIP 티켓은 10만원을 호가했었다. 지금도 비싸지만 당시는 오죽했겠는가. 작은 논란도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곳을 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그 티켓을 사서 나를 보내줄리 만무랬다. 그건 둘째치고 관심도 없었지만 미디어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그렇게 대단하면 한번쯤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팝을 좋아하는 무리중 2명은 공연 며칠전부터 그 티켓을 샀노라고 떠들어댔다. 그리고 공연 다음날 그들의 일장연설이 시작됐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HOT 오프닝에는 관심도 없었더라는 것. 그리고 무대 규모는 얼마나 대단했고, 잭슨의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는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말했다. 마치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은 자신들은 직접 봤노라고 말했다.
내심 엄마를 졸라 가보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쉬웠었다. 그리고 3년뒤 잭슨은 또 한번의 공연을 가졌다. 하지만 대학 새내기 시절 여기저기 휩쓸려 놀기 바빠 생각도 해보기 전에 공연은 이미 끝났었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잭슨. 한 평론가는 당시 이렇게 말했었다. "잭슨의 저 탄력과 파워풀한 모습을 언제 또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영영 다시는 잭슨의 공연을 보지 못하게 됐다. 10년전 아쉬움이 다시 떠오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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